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전국에 여러 이름의 둘레길이 많다. 나름대로 특성이 있지만 금오도 벼랑길은 둘레길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길을 돌면서 몇번이나 낭떠러지 절벽 위에 서있을 때는 금새라도 저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물길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금방이라도 블랙홀처럼 끌어들일 것 같이 물살이 소용돌이를 친다.
흔히 남해안을 침식해안으로서 리아스식 해안이 되어서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곳에 오면 융기가 되었다는 주장에 수긍을 할 수 있도록 해안단구 발달해 있다. 해안선에 평행을 해서 육지가 평평해진 곳을 말한다. 그래서 곳곳이 깎아지른 절벽, 천길 낭떠러지가 된다. 이제껏 길이 없어서 못 다녔던 여수시 남면 금오도 함구미 용머리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길이 만들어져 걸어갈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곳 금오도 뒷 바다는 망망대해 저 멀리 남태평양 파도가 넘실대는, 항상 물살이 거센 먼 바다가 시작된다. 오른쪽으로는 우주선이 발사되었던 외나라도 끝자락이 길게 나와 있고, 그 사이로 광도가 보인다. 금오도 벼랑길을 걸으면 바다와 섬이 갈라져 있는 그 끝에 내가 서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걷는다. 한쪽으로 발을 잘못 디디면 쭈르륵 미끄러져 빠져버릴 것 같다.
여수풀꽃사랑 회원 13명은 11월 13일 아침 9시 40분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금오도 가는 배를 1시간 30분 정도 탔다. 한려페리호는 백야도와 제도를 지나 개도와 오도 송고에서 손님을 내리고, 종점인 함구미 선착장에서 우리를 내려 주었다. 함구미에서는 곧바로 금오도 매봉산에서 옥녀봉을 검바위까지 4시간 30분 걸리는 산 등성이를 타고 가는 종주 코스와 용머리를 돌아서 초포, 직포로 빠지는 둘레길로 나눠진다.
금오도를 다녀간 많은 사람들은 1년내내 양쪽으로 바다를 보면서 등산을 할 수 있는 종주 코스를 선택하였다. 지금까지 용머리 벼랑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여수시가 국립공원관리공단 지원으로 거의 이 길을 만들어 개통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금오도의 새로운 비경으로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감탄을 받을 것이다.
함구미에서 직포까지 기껏 10km 정도 이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계속 안도까지 해안가로 갯가길을 만든다면 제주도와 지리산이 부럽지 않을 것으로 자신을 한다. 특히 이제껏 개방되지 않아서 울창한 산림과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 들이 사계절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반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절경에 감탄하여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용머리를 돌아온 우리는 송광사 절터를 만난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께서 지으셨다는 그 송광사는 온데간데 없다. 스님께서 이곳에 오기 위해 머물렀던 은적암과 한산사, 흥국사를 지으셨다. 해안단구인 이곳 용머리 절터 앞에는 널따란 밭이 있다. 밭은 남평 문씨 문중 땅이고, 산은 모두 통일교 일상그룹이 샀다고 한다. 안내를 맡으신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김병호 이사장은 절을 복원하고, 이 밭을 공원으로 꾸미면 주변 경치와 함께 끝내 줄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가파른 밭에서 고구마 순을 걷고 고구마를 캐다가 잠시 쉬고 계시는 노부부를 볼 수 있다. 또 조금 지나면 마을 뒤 언덕에는 어미소와 새끼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지나는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깎아지른듯한 낭떠러지 위에 이렇게 평평한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억새풀로 뒤덮힌 언덕, 세월의 흐름 속에서 묻혀버린 다랑이 논이 주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100년이 넘은 개비자나무 아래 얕은 물길을 건너기 위해 앙증맞게 만든 돌다리는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인어공주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 길을 걸으면서 역시 영화 촬영지일 수 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함구미 마을 뒷쪽에서 초포쪽으로 걷는 산길은 낭떠러지가 나무숲으로 가려서 덜 위태롭게 보이지만 서나무, 꾸지뽕나무, 머루, 다래, 개비자, 산초나무, 모란, 송악, 장구밥나무, 산가막살나무 등 셀 수 없이 우리의 자원인 나무들이 모여 있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지금 온통 금오도 산이 붉게 불타오르고 있었으며 노란 빛 조명으로 밝게 비추고 있었다.
이제 첫 도착지인 초포 마을이 보인다. 내려가는 길목에 외로이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채가 있다. 금방 빨아서 널어놓은 것 같은 빨래가 있어서 사람이 사는 것 같다. 금오도가 조선시대에 봉산, 산을 봉인을 해서 누구도 살지 못하게 하였다. 임금님의 관을 짜는 황장목 봉산이었다. 황장목은 해송을 말하는 것으로 경복궁 기둥을 비롯하여 여수 진남관, 흥국사 기둥, 거북선, 판옥선도 모두 이곳 해송으로 지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봉산을 해제하고 사람들이 들어와서 처음으로 살았던 곳이라고 해서 첫개, 초포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일제가 개간을 허용하면서 그 많던 해송을 베어서 일본으로 모두 가져가버리고 송고와 여천 당집, 이곳 초포와 직포 바닷가에 조금 남아있다. 나무를 베어가기 위해서 풀무질을 하던 곳이라는 불무골이 있고, 그 때 쓰던 샘이 아직 남아있다.
이 마을은 몽돌로 돌담을 쌓은 것이 이채롭다. 초포에서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우학리 막걸리를 김치에 들여마셨다. 초포 바닷가에서 마시는 막걸리가 달짝지근해서 평소 마시지 않은 분들까지도 벌컥 들이마신다. 앞으로 이 갯가길이 활성화 되면 슈퍼와 민박이 잘 될 것 같다. 사전에 예약을 하면 민박집에서 식사를 준비해 준다고 한다. 우리는 건너 굴등을 지나 직포까지 가야 한다. 그 다음에는 오늘 모두를 설레게 하는 참돔과 만남, 쫄깃쫄깃한 자연산 참돔회를 생각하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혈의 누' 영화를 찍었던 전형적인 해안단구인 굴등으로 올라간다. 억새밭을 지나서 마을 초입에 들어선 순간 집은 서너채 있는 것 같아도 인기척이 없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영화를 막 찍었던 그 때는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딸네집을 가셨는지 문이 꼭꼭 잠겨져 있다. 그 옛날 우리들이 어렸던 그 시절에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것 같은 고목은 덩그라니 세월의 흐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금방이라도 마실 갔던 동네 사람들이 어흠 하면서 뛰쳐나올 것 같다. 이 절벽 아래로 전망대를 만들어 모두가 신혼 여행 온 기분을 표현하였다. 보름달이 뜬 날 이곳에서 먼 바다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어섰다.
오늘 여수의 갯가길인 금오도 벼랑길의 마지막 목적지인 직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의 동쪽 옥녀봉의 선녀인 옥녀가 주변 모하, 두포 마을에서 목화와 누에고치를 가져와 이곳에서 베를 짰다고 하여 베틀의 바디(보대)의 이름을 따서 '보대'라고 부른다. 한자식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직포라고 한다. 처음 이 길을 걷겠다고 하면서 금오도 해송과 고기 중의 왕, 참돔의 정상 회담이라고 하였다. 해송이 초포보다 많이 남아있다. 그 회담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서 해송의 기운을 담아서 안도로 가서 참돔과 면담하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직포에는 아담한 우리 가족 전용 같이 쓸 수 있는 해수욕장이 있다. 이곳에 해송이 방풍림이 되어서 마을과 논밭을 지켜주고 있다. 해송이 있는 곳에 콘크리트를 쳐서 숨이 막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 일처럼 답답함을 느낀다. 제주도의 돌담과는 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돌담이 반겨준다. 이곳까지 남면 택시를 불러서 안도로 옮겨간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참돔과의 만남이다. 무려 4시간 동안 걷고서 늦어도 한참 늦은 점심을 먹는다. 20분 정도 차를 타고서 안도 백송식당에 도착하였다. 4명이서 먹을 수 있는 회접시에는 모두를 설레게 했던 자연산 참돔이 쫄깃한 육질의 살점을 가지런히 내놓고 있다. 그 곁에 뽈락과 쥐치가 함께 자리를 하고 있다.
왜 여수의 다른 횟집처럼 덤으로 주는 것이 적으냐고 묻는 말씀에 자연산 회로 대신한다고 한다. 그 대신 시내에서 10만원 정도 주어야 먹을 수 있는 회가 한 접시에 5만원이다. 참돔 회를 밭에서 키운 톡 쏘는 전통 갓에 싸먹는 순간, 막혔던 콧구멍이 확 뚫리는 것 같다. 별도로 겨자소스가 필요가 없다. 갯가길을 걷는 동안 내내 보았던 금오도의 명물 방풍나물 무침, 직접 바닷가에서 땄다는 홍합 삶은 것, 군소는 별미 중에 별미였다. 곁들인 소주 한 잔은 넘어가면서 절로 "캬!"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4시가 넘어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은 다시 금오도로 넘어와 여천 선착장에서 신기로 가는 5시 30분 막배를 탔다. 우리들처럼 조금이라도 더 금오도의 갯향을 느끼고 가려는 사람이 많았다. 30분 정도 배를 타고서 돌아오면서 저녁놀에 물들인 가막만 경치를 보고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기항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한 13명 여수풀꽃사랑 회원들은 모두가 평생 잊지 못할 답사였다고 입을 모아 칭찬을 한다.
각자 도시락을 싸거나 초포에서 점심을 먹는다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걷기가 될 수 있다. 금강산, 해금강 어디를 내놓아도 하나도 뒤떨어지지 않는 비경, 절경을 가진 금오도 벼랑길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을 것 같다. 우리가 먼저 이 영광을 차지하였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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